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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편장편 원문12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 1921 - 원문 『아이그, 아야.』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바늘 끝이 왼손 엄지 손가락 손톱 밑을 찔렸음이다. 그 손가락은 가늘게 떨고 하얀 손톱 밑으로 앵두(櫻두)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얼른 바늘을 빼고 다른 손 엄지 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하던 일가지를 팔꿈치로 고이고이 밀어 내려 놓았다. 이윽고 눌렀던 손을 떼어 보았다. 그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血色)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 낟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 또 아니 누를 수 없다. 이만하면 그 구멍이 아물었으려니 하고 손을 떼면 또 얼.. 2020. 3. 20.
구비설화 <삼국유사> 권5 효선편(孝善篇) 김현감호 (전문) 김현감호(金現感虎-김현이 범을 감동시킴)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파일에서 보름날까지 서울의 남자와 여자들은 홍륜사의 전탑을 도는 복회(福會)를 행했다. 원성왕때에 낭군(郎君)김현이 있었는데 밤이 깊도록 쉬지 않고 홀로 탑을 돌았다. 그 때 한 처녀도 염불을 외면서 따라 돌다가 서로 마음이 움직여 눈을 주었다. 돌기를 마치자 그는 구석진 곳으로 처녀를 데리고 가 정을 통했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따라가니 처녀는 사양하고 거절했으나 김현은 억지로 따라갔다. 가다가 서산기슭에 이르러 한 초가집에 들어가니 늙은 할미가 처녀에게 물었다. "함께 온 이가 누구냐?" 처녀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늙은 할미가 말하기를, "비록 좋은 일이긴 하나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므로 .. 2020. 3. 8.
양귀자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 1995 (전문)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3. 8.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1938 (전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 태 원 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신고,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꺼내 들고 그리고 문간으로 향하여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중문 앞까지 나간 아들은, 혹은 자기의 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들의 대답 소리가 자기의 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번에는 중문 밖에까지 들릴 목소리를 내었다. "일즉어니 들어오너라."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중문이 소리를 내어 열려지고, 또 소리를 내어 닫혀졌다. 어머니는 얇은 실망을 느끼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 한다. 중문 소리만 크게 나지 않았으면, 아들의 '네' 소리를, 혹은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20. 3. 8.
이광수 <무정> 1918 - 3 (원문) **** 장편소설을 한 호흡에 읽는 것이 힘들 수 있으니 세 번에 나눠서 볼 수 있도록 분량을 나눠놓았습니다. **** 이 책은 현대어 풀이를 해두지 않았어요. 83 "옳지, 이제는 되었소. 이제는 부모의 허락도 있고 당자도 승낙을 하였으니까, 이제는 정식으로 된 모양이외다." 하고 목사가 비로소 만족하여 웃는다. 목사의 생각에 이만하면 신식 혼인이 되었거니 한 것이다. 장로는 이제는 정식으로 약혼을 선언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하여, "그러면 혼약이 성립되었소." 하고 형식을 보며, "변변치 아니한 딸자식이오마는 일생을 부탁하오." 하고 다음에 선형을 보고도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친다. 형식은 꿈같이 기뻤다. 마치 전신의 피가 모두 머리로 모여 오르는 듯하여 눈이 다 안 보이는 것 같았다. 형식은 자기의 .. 2020.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