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 <탈출기> - 1925 (풀이본+전문)

최서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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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원문)

최서해

1

 

 김군! 수삼 차 편지는 반갑게 받았다. 그러나 한 번도 회답치 못하였다. 물론 군의 충정에는 나도 감사드리지만 그 충정을 나는 받을 수 없다.

 박군! 나는 군의 탈가를 찬성할 수 없다. 음험한 이역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처자를 버리고 나선 군의 행동을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군의 부모와 처자가 이역 노두에서 방황하는 것을 나는 눈앞에 보는 듯싶다. 그네들의 의지할 곳은 오직 군의 품밖에 없다. 군은 그네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군은 군의 가정에서 동량이다. 동량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조그마한 고통으로 집을 버리고 나선다는 것이 의지가 굳다는 박군으로서는 너무도 박약한 소위이다. 군은 ××단에 몸을 던져 ×선에 섰다는 말을 일전 황군에게서 듣기는 하였으나 그렇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시인할 수 없다. 가족을 못 살리는 힘으로 어찌 사회를 건지랴.

 박군! 나는 군이 돌아가기를 충정으로 바란다. 군의 가족이 사람들 발아래서 짓밟히는 것을 생각할 때 군의 가슴인들 어찌 편하랴.

 김군! 군은 이러한 말을 편지마다 썼지? 나는 군의 뜻을 잘 알았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하여 동정하여 주는 군에게 어찌 감사치 않으랴? 정다운 벗의 충고에 나는 늘 울었다. 그러나 그 충고를 들을 수 없다. 듣지 않는 것이 군에게 고통이 될는지? 분노가 될는지? 나에게 있어서는 행복일는지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김군! 나도 사람이다. 정애가 있는 사람이다. 나의 목숨 같은 내 가족이 유린받는 것을 내 어찌 생각지 않으랴? 나의 고통을 제삼자로서는 만 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탈가한 이유를 군에게 말하고자 한다. 여기에 대하여 동정과 비난은 군의 자유이다. 나는 다만 이러하다는 것을 군에게 알릴뿐이다. 나는 이것을 군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라도 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을 받는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단언한다. 군도 사람이어나 니의 말하는 것을 부인치는 못하리라.

 

2

 

 김군!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5년 전이다. 이것은 군도 아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에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떠났다. 내가 고향을 떠나 간도로 간 것은 너무도 절박한 생활에 시들은 몸에 새 힘을 얻을까 하여 새 희망을 품고 새 세계를 동경하며 떠난 것도 군이 아는 사실이다.

 간도는 천부금탕이다. 기름진 땅이 흔하여 어디를 가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사를 지으면 쌀도 흔할 것이다. 삼림이 많으니 나무 걱정도 될 것이 없다. 농사를 지어서 배불리 먹고 뜨뜻이 지내자. 그리고 깨끗한 초가나 지어 놓고 글도 읽고 무지한 농민들을 가르쳐서 이상촌을 건설하리라. 이렇게 하면 간도의 황무지를 개척할 수 있다.

 이것이 간도 갈 때의 내 머릿속에 그리었던 이상이었다. 이때에 나는 얼마나 기뻤으랴!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령을 넘어서 망망한 평야와 산천을 바라볼 때, 청춘의 내 가슴은 이상의 불길에 탔다. 구수한 내 소리와 헌헌한 내 행동에 어머니와 아내도 기뻐하였다. 오랑캐령을 올라서니 서북으로 쏠려 오는 봄 세찬 바람이 어떻게 뺨을 갈기는지.

  “에그 춥구나! 여기는 아직도 겨울이구나.”

하고 어머니는 수레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얼요, 이 바람을 많이 마셔야 상공이 올 것입니다.”

  나는 가장 씩씩하게 말하였다. 이처럼 나는 기쁘고 활기로웠다.

 

 3

 

 김군! 그러나 나의 이상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간도에 들어서서 한 달이 못되어서부터 거칠은 물결은 우리 세 생령의 앞에 기탄없이 몰려왔다.

 나는 농사를 지으려고 밭을 구하였다. 빈 땅은 없었다. 돈을 주고 사기 전에는 한 평의 땅이나마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인의 밭을 도조나 타조로 얻어야 한다. 1년 내 중국 사람에게서 양식을 꾸어 먹고 도조나 타조를 얻는대야 1년 양식 빚도 못 될 것이고, 또 나 같은 ‘시로도’에게는 밭을 주지 않았다. 생소한 산천이요, 생소한 사람들이니, 어디 가 어쩌면 좋을는지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H라는 촌 거리에 셋방을 얻어 가지고 어름어름하는 새에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넘었다. 그새에 몇 푼 남았던 돈은 다 불어먹고 밭은 고사하고 일자리도 못 얻었다. 나는 팔을 걷고 나섰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구들도 고쳐 주고 가마도 붙여 주었다. 이리하여 호구하게 되었다. 이때 H장에서는 나를 ‘온돌쟁이(구들 고치는 사람)’라고 불렀다. 갈아입을 의복이 없는 나는 늘 숯검정이 꺼멓게 묻은 의복을 벋을 새가 없었다.

 H장은 좁은 곳이다. 구들 고치는 일도 늘 있지 않았다. 그것으로 밥 먹기가 어려웠다. 나는 여름 불볕에 삯김도 매고 꼴도 베어 팔았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는 삯방아 찧고 강가에 나가서 부스러진 나뭇개비를 주워서 겨우 연명하였다.

 김군! 나는 이때부터 비로소 무서운 인간고를 느꼈다. 아아, 인생이란 과연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닥치는 풍파 때문에 눈물 흘린 일은 이때까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무를 줍고 젊은 아내가 삯방아를 찧을 때 나의 피는 끓었으며 나의 눈은 눈물에 흐려졌다.

 “에구, 차라리 내가 드러누워 앓고 있지. 네 괴로워하는 꼴은 차마 못 보겠다.”

 이것은 언제 내가 병들어 신음할 때에 어머니가 울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을 무심히 들었던 나는 이때에야 이 말의 참뜻을 느꼈다.

 “아아, 차라리 나의 고기가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늙은 어머니와 아내가 배를 주리고 남의 멸시를 받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구나.”

 나는 이렇게 여러 번 가슴을 쳤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비 오나 바람이 치나 헤아리지 않고 삯김, 삯심부름, 삯나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았다.

 “오늘도 배고프겠구나, 아침도 변변히 못 먹고……. 나는 너 배 주리지 않는 것을 보았으면 죽어도 눈을 감겠다.”

 내가 삯일을 하다가 늦게 돌아오면 어머니는 우실 듯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흔연하게,

 “배가, 무슨 배가 고파요.”

하고 대답하였다.

 내 아내는 늘 별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다소곳하고 아무 소리 없이 순종하였다. 나는 그것이 더욱 불쌍하게 생각된다. 나는 어머니보다도 아내 보기가 퍽 부끄러웠다.

 “경제적 자립도 못 되는 내가 왜 장가를 들었누?”

 이것이 부모의 한 일이었지만 나는 이렇게도 탄색하였다. 그럴수록 아내에게 대하여 황공하였고 존경하였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은 이때 내 머리를 몹시 때렸다. 이때 나에게 부지런한 자에게 복이 온다, 하는 말이 거짓말로 생각되었다. 그 말을 지상의 격언으로 굳게 믿어 온 나는 그 말에 도리어 일종의 의심을 품게 되었고 나중은 부인까지 하게 되었다.

 부지런하다면 이때 우리처럼 부지런함이 어디 있으며 정직하다면 이 때 우리 식구같이 정직함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빈곤은 날로 심하였다. 이틀 사흘 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이틀이나 굶고 일자리를 찾다가 집으로 들어가 보니 부엌 앞에서 아내가(아내는 이때에 아이를 배어서 배가 남산만하였다) 무엇을 먹다가 깜짝 놀란다. 그리고 손에 쥐었던 것을 얼른 아궁이에 집어넣는다. 이때 불쾌한 감정이 내 가슴에 떠올랐다.

 ‘……무엇 먹을까? 어디서 무엇을 얻었을까? 무엇이길래 어머니와 나 몰래 먹누? 아! 여편네란 이런 것이로구나! 아니 그러나 설마……. 그래도 무엇을 먹던데…….’

 나는 이렇게 아내를 의심도 하고 원망도 하고 밉게도 생각하였다. 아내는 아무런 말 없이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고 앉아 씩씩하다가 밖으로 나간다. 그 얼굴은 좀 붉었다. 아내가 나간 뒤에 나는 아내가 먹다 던진 것을 찾으려고 아궁이를 뒤지었다. 싸늘하게 식은 재를 막대기에 뒤져 내니 벌건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집었다. 그것은 귤껍질이다. 거기는 베먹은 잇자국이 있다. 귤껍질을 쥔 나의 손은 떨리고 잇자국을 보는 내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김군! 이 때 나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적당할까?

 ‘오죽 먹고 싶었으면 길바닥에 내던진 귤껍질을 주워 먹을까. 더욱 몸 비잖은 그가! 아아,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아내를 나는 의심하였구나! 이놈이 어찌하여 그러한 아내에게 불평을 품었는가. 나 같은 잔악한 놈이 어디 있으랴. 내가 양심이 부끄러워서 무슨 면목으로 아내를 볼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느껴 가며 눈물을 흘렸다. 귤껍질을 쥔 채로 이를 악물고 울었다.

 “야, 어째서 우느냐? 일어나거라. 우리도 살 때 있겠지, 늘 이렇겠느냐.”

하면서 누가 어깨를 친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인 것을 알았다.

 “아이구 어머니, 나는 불효자외다.”

하면서 어머니의 팔을 안고 자꾸자꾸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소리 없이 가슴을 부둥켜안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왜 우노? 울기만 하면 무엇 하나? 살자! 살자! 어떻게든지 살아보자! 내 어머니와 내 아내도 살아야 하겠다. 이 목숨이 있는 때까지는 벌어 보자!’

 나는 이를 갈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눈물은 여전히 흘렀다. 아내는 말없이 울고 섰는 내 곁에 와서 손으로 치마끈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떨어뜨린다. 농삿집에서 자란 아내는 지금도 어찌 수줍은지 내가 울면 같이 울기는 하여도 어떻게 말로 위로할 줄은 모른다.

 

4

 

 김군! 세월은 우리르 위하여 여름을 항시 주지는 않았다.

 서풍이 불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찬 기운은 벗은 우리를 위협하였다. 가을부터 나는 대구어 장사를 하였다. 3원을 주고 대구 열 마리를 사서 등에 지고 산골로 다니면서 콩과 바꾸었다. 난 대구 열 마리는 등에 질 수 있었으나 대구 열 마리를 주고 받은 콩 열 말은 질 수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3, 40리나 되는 곳에서 두 말씩 두 말씩 사흘 동안이나 져 왔다. 우리는 열 말이 되는 콩을 자본 삼아 두부장사를 시작하였다.

 아내와 나는 진종일 맷돌질을 하였다. 무거운 맷돌을 돌리고 나면 팔이 뚝 떨어지는 듯하였다.

 내가 이렇게 괴로울 적에 해산한 지 며칠이 안 되는 아내의 괴로움이야 어떠하였으랴? 그는 늘 낯이 부석부석하였다. 그래도 나는 무슨 불평이 있는 때면 아내를 욕하였다. 그러나 욕한 뒤에는 곧 후회하였었다. 콧구멍만한 부엌방에 가마를 걸고 맷돌을 놓고 나무를 들이고 의복가지를 걸고 하면 사람은 겨우 비비고 들어앉게 된다. 뜬김에 문 창은 떨어지고 벽은 눅눅하다. 모든 것이 후줄근하여 의복을 입은 채 미지근한 물 속에 들어앉은 듯하였다. 어떤 때는 애써 갈아 놓은 비지가 이 뜬김 속에서 쉬어 버렸다. 두부 물이 가마에서 몹시 끓어 번질 때에 우윳빛 같은 두부 물 위에 버터 빛 같은 노란 기름이 엉기면(그것은 두부가 잘될 징조다) 우리는 안심한다. 그러나 두부 물이 희멀끔해지고 기름기가 돌지 않으면 거기만 시선을 쏘고 있는 아내의 낯빛부터 글러 가기 시작한다. 초를 쳐 보아서 두부 발이 서지 않게 매캐지근하게 풀려질 때에는 우리의 가슴은 덜컥한다.

 “또 쉰 게로구나! 저를 어쩌누?”

 젖을 달라고 빽빽 우는 어린아이를 안고 서서 두부 물만 들여다보시는 어머니는 목 메인 말씀을 하시면서 우신다. 이렇게 되면 온 집안은 신산하여 말할 수 없는 울음, 비통, 처참, 소조한 분위기에 싸인다.

 “너 고생한 게 애닯구나! 팔이 부러지게 갈아서 그거(두부)를 팔아서 장을 보려고 태산같이 바랐더니…….”

 어머니는 그저 가슴을 뜯으면서 우신다. 아내도 울 듯 울 듯 머리를 숙인다. 그 두부를 판대야 큰돈은 못 된다. 기껏 남는대야 20전이나 30전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호구를 한다. 20전이나 30전에 어머니는 운다. 아내도 기운이 준다. 나까지 가슴이 바짝바짝 조인다.  

 그날은 하는 수 없이 쉰 두부 물로 때를 메우고 지낸다. 아이는 젖을 달라고 밤새껏 빽빽거린다. 우리의 살림에 어린애도 귀치는 않았다.

 

5

 

 울면서 겨자 먹기로 괴로운 대로 또 두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땔나무가 없다. 나는 낫을 들고 떠난다. 내가 낫을 들고 떠나면 산후 여독으로 신음하는 아내는 낫을 들고 말없이 나를 따라나선다. 어머니와 나는 굳이 만류하나 아내는 듣지 않는다. 내 손으로 하는 나무 이언만 마음 놓고는 못한다. 산 임자에게 들키면 여간한 경을 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황혼이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지고 밤이 깊어서 돌아온다.

 아내는 이고 나는 지고 캄캄한 밤에 산비탈로 내려오다가 발이 미끄러지거나 돌에 채이면 곤두박질을 하여 나뭇집 속에 든다. 아내는 소리 없이 이었던 나무를 내려놓고 나뭇짐에 눌려서 버둑거리는 나를 겨우 끄집어 일으킨다. 그러나 내가 나뭇짐을 지고 일어나면 아내는 혼자 나뭇짐을 이지 못한다. 또 내가 나뭇짐을 벗고 아내에게 이어 주면 나는 추어 주는 이 없이는 나뭇짐을 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어떤 높은 바위에 벗어 놓고 아내에게 이어 준다. 이리하여 산비탈을 내려오면 언제 왔는지 어머니느 애를 업고 우둘우둘 떨면서 산 아래서 기다리다가도,

 “인제 오니? 나는 너 또 붙들리지나 않은가 하여 혼이 났다.”

하신다. 이때마다 내 가슴은 저렸다. 나는 이렇게 나무를 하다가 중국 경찰서까지 잡혀 가서 여러 번 맞았다.

 이때 이웃에서는 우리를 조소하고 경찰에서는 우리를 의심하였다.

 흥, 신수가 멀쩡한 연놈들이 그 꼴이야. 어디 가 일자리도 구하지 않고 그 눈이 누래서 두부장사 하는 꼬락서니는 참 더러워서 못 보겠네. 알을 달고 나서 그렇게야 살리?

 이것은 이웃 남녀가 비웃는 소리였다. 그리고 어떤 산 임자가 나무 잃고 고발을 하며 경찰서에서는 불문곡직하고 우리 집부터 수색하고 질문하면서 나를 때린다. 그러나 나는 호소할 곳이 없다.

 

6

 

 김군! 이러구러 겨울은 점점 깊어 가고 기한은 점점 박두하였다. 일자리는 없고, 그렇다고 손을 털고 앉았을 수도 없었다. 모든 식구가 퍼러 퍼레서 굶고 있는 꼴을 나는 그저 볼 수 없었다. 시퍼런 칼이라도 들고 하루라도 괴로운 생을 모면하도록 쿡쿡 찔러 없애고 나까지 없어지든지, 나가서 강도질이라도 하여서 기한을 면하든지 하는 수밖에는 더 도리가 없게 절박하였다.

 나는 일이 없으면 없느니만큼, 고통이 닥치면 닥치느니만큼 내 번민은 크다. 나는 어떤 날은 거의 얼빠진 사람처럼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 일도 있었다. 이때 머릿속에서는 머리를 움실움실 드는 사상이 있었다(오늘날에 생각하면 그것은 나의 전 운명을 결정할 사상이었다).

 그 생각은 누구의 가르침에 의해 일어난 것도 아니려니와 일부러 일으키려고 애써서 일어난 것도 아니다. 봄 풀 싹같이 내 머릿속에서 점점 머리를 들었다.

 나는 여태까지 세상에 대하여 충실하였다. 어디까지든지 충실하려고 하였다. 내 어머니, 내 아내까지도……. 뼈가 부서지고 고기가 찢기더라도 충실한 노력으로써 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속였다. 우리의 충실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충실한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우리는 여태까지 속아 살아왔다. 포악하고 허위스럽고 요사한 무리를 용납하고 옹호하는 세상인 것을 참으로 몰랐다. 우리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의식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네들은 그러한 세상의 분위기에 취하였었다. 나도 이때까지 취하였었다. 우리는 우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서 살아왔었다.

 김군! 나는 사람들을 원망치 않는다. 그러나 마주에 취하여 자기의 피를 짜 바치면서도 깨짐 못하는 사람을 그저 볼 수 없다. 허위와 요사와 표독과 게으른 자를 옹호하고 용납하는 이 제도는 더욱 그저 둘 수 없다.

 이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의 생의 만족을 느낄 날이 없을 것이다. 어찌하여 겨우 연명을 한다 하더라도 죽지 못하는 삶이 될 것이요, 그 영향은 자식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나는 어미 품 속에서 빽빽하는 어린것의 장래를 생각할 때면 애잡짤한 감정과 분함을 금할 수 없다. 내가 늘 이 상태면(그것은 거의 정한 이치다) 그에게는 상당한 교양은 고사하고, 다리 밑이나 남의 집 문간에 버리게 될 터이니, 아! 삶을 받을 만한 생명을 죄 없이 찌그러지게 하는 것이 어찌 애닯지 않으랴? 그렇다면 그것을 나의 죄라 할까?

 김군!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부터 살려고 한다. 이때까지는 최면술에 걸린 송장이었다. 제가 죽은 송장으로 남(식구들)을 어찌 살리랴. 그러려면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를,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생의 충동이며 확충이라고 본다. 나는 여기서 무상의 법열을 느끼려고 한다. 아니 벌써부터 느껴진다. 이 사상이 나로 하여금 집을 탈출케 하였으며, ××단에 가입케 하였으며, 비바람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벼랑 끝보다 더 험한 ×선에 서게 한 것이다.

 김군! 거듭 말한다. 나도 사람이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떠나는 날부터 식구들은 더욱 곤경에 들 줄로 나는 안다. 자칫하면 눈 속이나 어느 구렁에서 죽는 줄도 모르게 굶어 죽을 줄도 나는 잘 안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의 남의 집 행랑어멈이나 아법이며, 노두에 방황하는 거지를 무심히 보지 않는다.

 아! 나의 식구도 그럴 것을 생각할 때면 자연히 흐르는 눈물과 뿌직뿌직 찢기는 가슴을 덮쳐 잡는다. 그러나 나는 이를 갈고 주먹을 쥔다. 눈물을 아니 흘리려고 하며 비애에 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울기에는 너무도 때가 늦었으며 비애에 상하는 것은 우리의 박약을 너무도 표시하는 듯싶다. 어떠한 고통이든지 참고 분투하려고 한다.

 김군! 이것이 나의 탈가한 이유를 대략 적은 것이다. 나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내 식구에게 편지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네가 죽어도, 내가 또 죽어도…….

 나는 이러다가 성공 없이 죽는다 하더라도 원한이 없겠다. 이 시대, 이 민중의 의무를 이행한 까닭이다.

 아아, 김군아! 말은 다 하였으나 정은 그저 가슴에 넘치누나!

 

1925년 3월호《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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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 최서해 (1925) "풀이본"

** 이 책에서 등장하는 XX단은 시기상 '의열단'으로 해석됩니다. ** (오디쌤)

 

김군! 두세 번의 편지는 반갑게 받았다. 그러나 한 번도 답장하지 못하였다. 물론 자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에는 나도 감사드리지만 그 마음을 나는 받을 수 없다.

자네는 이런 편지를 썼었지.

 

<박군! 나는 자네가 집을 나가기로 한 결정에 반대한다. 늙은 어머니와 어린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험한 타지역으로 떠난다는 자네의 행동을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박군 자네의 부모와 부인, 자식이 다른 지역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그들의 의지할 곳은 오직 자네 품밖에 없다. 자네는 그네들을 구해야 할 것이다.

 박군 자네는 그대 가정에서 기둥이다. 기둥이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조그마한 고통때문에 집을 버리고 나서기로 의지를 다진 것은 너무도 사소한 행동이다. 자네가 xx단에 몸을 던져 ×선에 섰다는 말을 예전에 황군에게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가족을 못 살리는 힘으로 어찌 사회를 건져내겠는가.

 박군! 나는 자네가 돌아가기를 진심어린 정으로 바란다. 자네 가족이 사람들 발 아래에서 짓밟히는 것을 생각할 때 자네의 가슴인들 어떻게 편할 수 있겠는가.>

 

 김군! 자네는 이러한 말을 편지마다 썼지? 나는 김군 자네 뜻을 잘 알았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하여 동정심을 가져주는 그대에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다운 벗의 충고에 나는 늘 울었다. 그러나 그 충고를 들을 수 없다. 듣지 않는 것이 자네에게 고통이 되는가? 분노가 되는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김군! 나도 사람이다. 사람과 정이 있는 사람이다. 나의 목숨 같은 내 가족의 인권이 짓밟히는 것을 내 어찌 생각않겠는가? 나의 고통을 제삼자는 10000분의 1이라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내가 집을 떠난 이유를 자네에게 말하고자 한다. 여기에 대하여 동정과 비난은 자네의 자유이다. 나는 다만 이런 이유였다는 것을 김군 자네에게 알릴 뿐이다. 나는 이것을 자네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라도 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단호히 말한다. 자네도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말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2

 김군!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5년 전이다. 이것은 그대도 아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에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떠났다. 너무도 절박한 생활에 시들어버린 몸에 새 힘을 얻을까 하여 새 희망을 품고 새 세계를 동경하며 간도로 떠난 것도 군이 아는 사실이다.

 - 간도는 하늘이 내려 준 황금 같은 땅이다. 기름진 땅이 흔하여 어디를 가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사를 지으면 쌀도 흔할 것이다. 빽빽한 숲이 많으니 나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농사를 지어서 배불리 먹고 뜨뜻이 지내자. 그리고 깨끗한 초가집 한 채 지어 놓고 글도 읽고 아는 것 없는 농민들을 가르쳐서 살기 좋은 마을을 건설하리라. 이렇게 하면 간도의 거친 땅을 개척할 수 있다. -

 이것이 간도 갈 때의 내 머릿속에 그렸던 계획이었다. 이때에 나는 얼마나 기뻤겠는가!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 고개를 넘어서 한없이 넓은 평야와 산천을 바라볼 때, 꿈으로 가득한 청춘의 가슴은 불이 끓어올랐다. 구수한 내 소리와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내 행동에 어머니와 아내도 기뻐하였다. 오랑캐 고개를 올라서니 서북으로 쏠려 오는 세찬 봄바람이 어찌나 뺨을 갈겨대는지.

  “에그 춥구나! 여기는 아직도 겨울이구나.”

하고 어머니는 수레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뭘요, 괜찮습니다. 이 바람을 많이 마셔야 정상이 보일 것입니다.”

  나는 가장 씩씩하게 말하였다. 이처럼 나는 기쁘고 활기찼다.

 

3

 김군! 그러나 나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간도에 들어서서 한 달이 못되어서부터 거친 물결은 우리 세 생명의 앞에 망설임없이 몰려왔다.

 나는 농사를 지으려고 밭을 구하였다. 빈 땅은 없었다. 돈을 주고 사기 전에는 한 평의 땅 조차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인의 밭을 곡식으로 갚거나 소작료를 내서 얻어야 한다. 1년 내 중국 사람에게서 양식을 꾸어 먹고 소작료를 얻어봤자, 1년 밥값 빚도 못 될 것이고, 또 나 같은 서툴고 어리바리한 놈에게는 밭을 주지 않았다. 생소한 자연풍경에, 생소한 사람들이니, 어디 가서 어쩌면 좋을지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H라는 지역 거리에 작은 월세방을 얻어서 우물쭈물하는 새에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넘었다. 그 사이 몇 푼 남았던 돈은 다 써버리고 밭은 둘째치고 일자리도 못 얻었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온돌바닥도 고쳐 주고 가마솥도 붙여 주었다. 이리하여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적은 돈을 벌게 되었다. 이때 H장에서는 나를 ‘온돌쟁이(온돌바닥 고치는 사람)’라고 불렀다. 갈아입을 옷이 없는 나는 늘 숯검정이 꺼멓게 묻은 옷을 벗을 시간도 없었다.

 H장은 좁은 곳이다. 온돌바닥 고치는 일도 없을 때가 많았다.. 그것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나는 해가 쨍쩅한 더운 여름날, 남의 논밭을 돈밭고 갈아주고 풀도 베어 팔았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는 돈 받고 방아를 찧어주고 강가에 나가서 부스러진 나뭇개비를 주워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군! 나는 이때부터 비로소 사람이 세상살며 받아야 하는 고통의 무서움을 느꼈다. 아아, 인생이란 과연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때까지 나에게 닥치는 세상살이의 어려움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무를 줍고 젊은 아내가 남의 집 방아를 찧어주면서 돈을 벌 때 나의 피는 끓었으며 나의 눈은 눈물에 흐려졌다.

 “에구, 차라리 내가 드러누워 앓고 있지. 너 괴로워하는 꼴은 차마 못 보겠다.”

 이것은 언젠가 내가 병들어 신음할 때에 어머니가 울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을 무심히 들었던 나는 이때에야 이 말의 참뜻을 느꼈다.

 “아아, 차라리 나의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늙은 어머니와 아내가 굶고 남의 무시를 받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구나.”

 나는 이렇게 여러 번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비 오나 바람이 치나 헤아리지 않고 남의 논밭 갈아주기, 심부름 하기, 장작패기 등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해주며 돈을 벌었다.

 “오늘도 배고프겠구나,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나는 너 굶지 않는 것을 보았으면 죽어도 눈을 감겠다.”

 내가 일을 하다가 늦게 돌아오면 어머니는 우실 듯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않은 듯,

 “배가, 무슨 배가 고파요.”

하고 대답하였다.

 내 아내는 늘 별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얌전하고 아무 소리 없이 순종하였다. 나는 그것이 더욱 불쌍하게 생각된다. 나는 어머니보다도 아내를 볼 때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경제적 자립도 못 되는 내가 왜 장가를 들었을까?”

 부모가 이어줘서 한 결혼이지만 나는 이렇게도 생각하며 한숨쉬었다. 그럴수록 아내가 대단하게 느껴지고 존경하였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은 이때 내 머리를 몹시 때렸다. 이때 나에게 ‘부지런한 자에게 복이 온다.’ 하는 말이 거짓말로 생각되었다. 그 말을 세상의 명언으로 굳게 믿어 온 나는 그 말에 오히려 의심을 품게 되었고 나중엔 인정하지 않게까지 되었다.

 부지런하다면 이 시기의 우리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정직하다면 이 때 우리 식구같이 정직함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가난함은 날로 심해졌다. 이틀 사흘 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이틀이나 굶고 일자리를 찾다가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때쯤 부인은 임신을 해서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있었다. 그런 아내는 부엌 앞에서 무엇을 먹다가 깜짝 놀란다. 그리고 손에 쥐었던 것을 얼른 아궁이에 집어넣는다. 이때 불쾌한 감정이 내 가슴에 떠올랐다.

 ‘……무엇을 먹었을까? 어디서 무엇을 얻어온걸까? 무엇이길래 어머니와 나 몰래 먹었는가? 아! 여인네란 이런 것이로구나! 치사하고 섭섭하다.. 아니 그러나 설마……. 아냐, 그래도 무엇을 먹던데…….’

 나는 이렇게 아내를 의심도 하고 원망도 하고 밉게도 생각하였다. 아내는 아무런 말 없이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고 앉아 씩씩거리다가 밖으로 나간다. 그 얼굴은 좀 붉었다. 아내가 나간 뒤에 나는 아내가 먹다 던진 것을 찾으려고 아궁이를 뒤지었다. 싸늘하게 식은 재를 막대기로 뒤져보니 벌건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집었다. 그것은 귤껍질이다. 거기는 한입 베어먹은 잇자국이 있다. 귤껍질을 쥔 나의 손은 떨리고 잇자국을 보는 내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김군! 이 때 나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적당할까?

 ‘오죽 먹고 싶었으면 길바닥에 내던진 귤껍질을 주워 먹을까. 더욱 아기 때문에 배도 불러있는 그가! 아아, 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한 아내를 나는 의심하였구나! 이놈이 어찌하여 그러한 아내에게 불평을 품었는가. 나 같은 잔인하고 악한 놈이 어디 있으랴. 내가 양심이 있다면 무슨 면목으로 아내를 볼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흐느껴 가며 눈물을 흘렸다. 귤껍질을 쥔 채로 이를 악물고 울었다.

 “야, 어째서 우느냐? 일어나거라. 우리도 잘 살 날이 있겠지, 늘 이렇겠느냐.”

하면서 누가 어깨를 친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인 것을 알았다.

 “아이구 어머니, 나는 불효자입니다.”

하면서 어머니의 팔을 안고 자꾸자꾸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소리 없이 가슴을 부둥켜안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왜 우노? 울기만 하면 무엇 하나? 살자! 살자! 어떻게든지 살아보자! 내 어머니와 내 아내도 살아야 하겠다. 이 목숨이 있는 때까지는 벌어 보자!’

 나는 이를 갈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눈물은 여전히 흘렀다. 아내는 말없이 울고 섰는 내 곁에 와서 손으로 치마끈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떨어뜨린다. 농삿집에서 자란 아내는 지금도 어찌나 수줍음을 타는지 내가 울면 같이 울기는 하여도 어떻게 말로 위로할 줄은 모른다.

 

4

 김군! 세월은 우리를 위하여 여름을 항상 주지는 않았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찬 기운은 입을 옷 없는 우리를 위협하였다. 가을부터 나는 생선 장사를 하였다. 3원을 주고 대구 열 마리를 사서 등에 지고 산골로 다니면서 콩과 바꾸었다. 난 대구 열 마리는 등에 질 수 있었으나 대구 열 마리를 주고 받은 콩 열 말은 너무 무거워서 등에 질 수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3~40리나 되는 곳에서 두 말씩 두 말씩 나누어 사흘(3일) 동안이나 등에 지고 왔다. 우리는 열 말이 되는 콩을 자본으로 삼아 두부장사를 시작하였다.

 아내와 나는 하루종일 맷돌질을 하였다. 무거운 맷돌을 돌리고 나면 팔이 떨어지는 듯하였다.

 내가 이렇게 괴로울 때 아기를 낳은 지 며칠이 안 되는 아내의 괴로움이야 어떠하였으랴? 그는 늘 얼굴빛이 푸석푸석하다. 그래도 나는 무슨 불평이 있는 때면 아내를 욕하였다. 그러나 욕한 뒤에는 곧 후회하였었다. 콧구멍만한 부엌방에 가마솥을 걸고 맷돌을 놓고 나무를 들이고 옷가지를 걸고 하면 사람은 겨우 들어와 앉을 수 있도록 좁게 된다. 뿌연 김으로 가득찬 방 창문은 떨어지고 벽은 눅눅하다. 모든 것이 후줄근하여 옷을 입은 채 미지근한 물 속에 들어앉은 듯하였다. 어떤 때는 애써 갈아 놓은 비지가 이 김 속에서 쉬어 버렸다. 두부 물이 가마에서 몹시 끓어 번질 때에 우윳빛 같은 두부 물 위에 버터 빛 같은 노란 기름이 엉기면 두부가 잘 만들어질 징조다. 그걸 보면 우리는 안심한다. 그러나 두부 물이 희멀끔해지고 기름기가 돌지 않으면 거기만 시선을 쏘고 있는 아내의 낯빛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식초를 떨어뜨려 보아서 두부가 엉키지 않고 매캐지근하게 풀려질 때에는 우리의 가슴은 덜컥한다.

 “또 쉰 것이구나! 저를 어쩌누?”

 젖을 달라고 빽빽 우는 어린아이를 안고 서서 두부 물만 들여다보시는 어머니는 목 메인 말씀을 하시면서 우신다. 이렇게 되면 온 집안은 고생스러워 말할 수 없는 울음, 비통, 처참,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싸인다.

 “너 고생한 게 너무 아깝고 슬프구나! 팔이 부러지게 갈도록 그거(두부)를 팔아서 장을 보려고 태산같이 바랐더니…….”

 어머니는 그저 가슴을 뜯으면서 우신다. 아내도 울 듯 울 듯 머리를 숙인다. 그 두부를 판다고해도 큰돈은 못 된다. 기껏 남아봤자 20전이나 30전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겨우 먹고 산다. 20전이나 30전에 어머니는 운다. 아내도 기운이 줄어든다. 나까지 가슴이 바짝바짝 조인다.  

 그날은 하는 수 없이 쉬어버린 두부 물로 밥을 대신하고 지낸다. 아이는 젖을 달라고 밤새껏 빽빽거린다. 우리의 살림에 어린애도 귀한 대접받지 못했다.

 

5

 울면서 겨자 먹기로 괴로운 대로 또 두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땔나무가 없다. 나는 낫을 들고 떠난다. 내가 낫을 들고 떠나면 출산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아내는 낫을 들고 말없이 나를 따라나선다. 어머니와 나는 굳이 나오지말라고 말리지만 아내는 듣지 않는다. 내 손으로 하는 나무지만 마음 편하게는 못한다. 산 주인에게 들키면 보통 크게 혼쭐 나는게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가 지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지고 밤이 깊어서 돌아온다.

 아내는 머리에 이고, 나는 등에 지고 캄캄한 밤에 산비탈길로 내려오다가 발이 미끄러지거나 돌에 채이면 곤두박질을 하여 나뭇짐 속에 파묻힌다. 아내는 소리 없이 머리에 이었던 나무를 내려놓고 나뭇짐에 눌려서 버둥거리는 나를 겨우 끄집어 일으킨다. 그러나 내가 나뭇짐을 지고 일어나면 아내는 혼자 나뭇짐을 머리에 얹지 못한다. 또 내가 나뭇짐을 벗고 아내에게 이어 주면 나는 도와주는 사람 없이는 나뭇짐을 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어떤 높은 바위에 벗어 놓고 아내 머리에 나무를 얹어 준다. 이리하여 산비탈을 내려오면 언제 왔는지 어머니는 애를 업고 우둘우둘 떨면서 산 아래서 기다리다가도,

 “인제 오니? 나는 너 또 붙잡혔을까봐 걱정되어 혼이 났다.”

하신다. 이때마다 내 가슴은 안쓰러움에 찌릿찌릿 저렸다. 나는 이렇게 나무를 하다가 중국 경찰서까지 잡혀 가서 여러 번 맞았다.

 이때 이웃에서는 우리를 비웃고 경찰에서는 우리를 의심하였다.

 “흥, 겉모습 멀쩡한 년놈들이 그 꼴이야. 어디 가서 일자리도 구하지 않고 그 눈깔이 누래서 두부장사 하는 꼬락서니는 참 더러워서 못 보겠네. 불알을 달고 있는 사내자식 그렇게 살아?”

 이것은 이웃 남녀가 비웃는 소리였다. 그리고 어떤 산 주인이 나무 잃고 고발을 하며 경찰서에서는 아무 것도 묻거나 따져보지 않고 우리 집부터 뒤져보고 질문하면서 나를 때린다. 그러나 나는 호소할 곳이 없다.

 

6

 김군! 이래저래 겨울은 점점 깊어 가고 시기는 점점 다가왔다. 일자리는 없고, 그렇다고 손을 털고 앉았을 수도 없었다. 나는 모든 식구가 시퍼렇게 굶고 있는 꼴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시퍼런 칼이라도 들고 하루라도 괴로운 생을 벗어나도록 쿡쿡 찔러 없애고 나까지 없어지든지, 나가서 강도질이라도 하여서 굶주림을 면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박하였다. 나는 일이 없으면 없는 만큼, 고통이 닥치면 닥치는만큼 내 답답함, 괴로움은 크다. 나는 어떤 날은 거의 영혼 나간 사람처럼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 일도 있었다. 이때 머릿속에서는 머리를 움실움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날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의 모든 운명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누구의 가르침에 의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일으키려고 애써서 일어난 것도 아니다. 봄 풀 싹같이 내 머릿속에서 점점 머리를 들었다.

 나는 여태까지 세상에 대하여 충실하였다. 어디까지든지 충실하려고 하였다. 내 어머니, 내 아내까지도…….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기더라도 충실한 노력으로써 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속였다. 우리의 충직함과 성실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성실한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우리는 여태까지 속아 살아왔다. 포악하고, 껍데기만 남은 듯 텅 비어았고 간사한 무리를 받아들이고하고 편들어주는 세상인 것을 참으로 몰랐다. 우리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세상의 분위기에 취했었다. 나도 이때까지 취해있었다. 우리는 우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하고 못되먹은 제도의 희생자로서 살아왔었다.

 

 김군! 나는 사람들을 원망치 않는다. 그러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에 취하여 자기의 피를 짜 바치면서도,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음에도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거짓과 간사함와 표독과 게으른 자를 편들고 용납하는 이 제도는 더욱 그저 둘 수 없다.

 이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 삶의 만족을 느낄 날이 없을 것이다. 어찌하여 겨우 목숨을 붙들고 있다 하더라도 죽지 못해 사는 삶이 될 것이요, 그 영향은 자식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나는 어미 품 속에서 빽빽 우는 어린 것의 장래를 생각할 때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안타까움과 분함을 금할 수 없다. 내가 늘 이런 상태로 살아갈 것은 뻔하다. 이런 현실은 그에게는 높은 교양은 고사하고, 다리 밑이나 남의 집 문간에 버려지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니, 아! 삶을 이어받을 만한 생명을 죄 없이 찌그러지게 하는 것이 어찌 슬프고 안타깝지 않으랴? 그렇다면 그것을 나의 죄라 할까?

 김군!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부터 살려고 한다. 이때까지는 최면술에 걸린 시체였다. 제가 죽은 시체라면 남(가족들)을 어찌 살릴 수 있으랴. 그러려면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여러 사람들을, 그리고 험악한 이 공기의 뿌리를 쳐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간이 살고자 하는 충동이며, 충실히 살도록 넓혀가는 방법이라고 본다.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참된 기쁨을 느끼려고 한다. 아니 벌써부터 느껴진다. 이 생각이 내가 집을 탈출하게 하였으며, ××단에 가입케 하였으며, 비바람 밤낮을 생각하지 않고 벼랑 끝보다 더 험한 ×선에 서게 한 것이다.

 김군! 거듭 말한다. 나도 사람이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떠나는 날부터 식구들은 더욱 곤란하게 될 것을 나는 안다. 자칫하면 눈 속이나 어느 구덩이에서 죽는 줄도 모르게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조차 나는 잘 안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의 남의 집 하인 방에서 살던 아줌마나 아저씨, 길거리에 방황하는 거지를 무심히 보지 않는다.

 아! 나의 식구도 그럴 것을 생각할 때면 자연스레 흐르는 눈물과 뿌직뿌직 찢기는 가슴을 덮쳐 잡는다. 그러나 나는 이를 갈고 주먹을 쥔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며 슬픔에 시들지 않으려고 한다. 울기에는 너무도 때가 늦었으며 슬픔에 가라앉는 것은 우리의 약함을 너무도 티내는 것 같다. 어떠한 고통이든지 참고 싸우려고 한다. 김군! 이것이 내가 집을 나온 이유를 대략 적은 것이다. 나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내 식구에게 편지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이 죽어도, 내가 또 죽어도…….

 나는 이러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한이 없을 것 같다. 이 시대, 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아아, 김군아! 할 말은 다 하였으나 정은 그저 가슴에 넘치는구나!

 

1925년 3월호《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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